"청명아. 그리 용을 써서 되겠느냐." 웃음기 어린 목소리에 청명은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불쑥 튀어나온 꼬리가 기분 나쁜 티를 내듯 바닥을 탁탁 때렸으나, 상대는 개의치 않는 모양이었다. 오히려 요놈, 하며 손을 내밀어 젖살이 채 빠지지 않은 청명의 뺨을 꼬집기까지 했다. "내 네 방식을 잘 아는 것은 아니나, 살아 보니 무언가를 키울 땐 윽박질러서는 안...
"흐아암..." 쭈욱 기지개를 켜고 몸을 발딱 일으킨 당보는 더듬더듬 장포를 찾아 둘러 입고 밖으로 나섰다. 이 생활도 벌써 한 달이 넘어가니 동굴에서 눈을 뜨는 것도 제법 익숙했다. 물론 이런 돌산에서 할 것은 많지 않았으므로, 일과라 해봤자 별 대단한 것은 없었다. "아무리 돌산이라지만 어떻게 풀 한 포기 안 날 수가." 돌바닥에서 자느라 굳은 몸을 쭉...
그렇다. 당보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어? 범 형님. 오늘은 왜 또 기분이 안 좋으실까." 그것도 청명의 예상 범주를 한참 뛰어넘는 수준으로 그랬다. "빼지 마시고. 내가 이걸 구해 형님과 마시겠다고 얼마나 기를 썼는지 아시오? 진짜 좋은 술이라니까 그러네." 작신작신 때려눕혀 다시는 오지 않겠거니 생각했었던 것이 무색하게 당보는 꼭 사흘 만에 도로 발을 ...
언제부터였을까. 청명은 스스로가 고이고 고여 고이다 못해 썩어들어, 그 어떠한 것도 더는 싹틔울 수가 없는 물이 되었다고. 나무 한 그루 없는 자신의 황량한 돌산에서, 그 중 가장 깊은 동굴 속에 처박혀.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철벅! 간밤 내도록 내린 비가 고인 웅덩이를 강하게 밟는 기척만 아니었더라면, 청명은 다시 한번 긴 잠에 빠져들었을지도 몰랐다. ...
여느 날과 다름없는 하루였다. 함께 아침을 맞고, 새벽 수련이라는 명목으로 비무를 좀 하다가, 밥 먹고, 소화 시킬 겸 사파 새끼들을 두들겨 준 것까지는 그랬다. 이변이 생긴 것은 청명이 ‘이 새끼들은 얼마나 해 먹었나 볼까?’ 하며 그들의 창고를 벌컥 열어젖혔을 때 생겼다. 잠겨 있던 문을 힘으로 잡아 뜯고 보니 아슬아슬하게 선반에 걸쳐있던 병이 흔들거리...
<개박하와 뽀뽀> "음..." 잠깐 뒤척이긴 했으나, 워낙 편안한 품인지라 당보는 금방 도로 잠에 빠져들었다. 맞닿아 전해지는 체온은 따끈하고, 살짝 눌리는 무게마저 답답함보다는 안정감에 가까웠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다 문득 저를 부르는 듯한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아 꾸물꾸물 눈을 떴다. 본래 아침이라 해도 이리 풀어지는 편은 아니었는데. 청명...
자기 전까지만 해도 비어 있던 책에 글씨가 생겼다. 일반적으론 밤새 누군가 침입해 글을 써두고 갔다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그럴듯한 추론일 것이다. 허나 침소의 주인이 암존 당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야기는 많은 것이 달라진다. 현 천하제일인이라는 자리는 아무나 오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특히 당보는 타고나길 예민한데다 당문의 무인으로 자라 수면향 따윈 ...
그날은 당보의 생일이었다. 축하의 말을 건네는 이들에게 적당히 감사의 표시를 하며 돌아오니 처소엔 제 앞으로 들어온 선물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별다른 감흥은 없었으나, 새로운 것을 구경하길 좋아하던 당보는 하루의 피로를 억누르고서라도 자기 전 선물을 열어 보기를 택했다. "보자아. 옥패, 장신구... 이건 환단인가? 흐음."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다 그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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